2007년 10월 24일 수요일

성공한 그녀들에겐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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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내게 20대는 암울했지만

사진이 아니면 죽을것만 같은…

그 열정이 지금의 나를 만들어

▶조선희=‘연예인의 매력을 누구보다 잘 포착하는 인물’로 소문이 자자한 유명 상업 사진작가. 연예인을 연예인 자신보다 더 잘 꿰뚫어 그의 주위에는 사진을 찍겠다는 스타들이 줄을 서 있다. 연세대 의생활학과를 졸업한 뒤 사진이 좋아 무작정 사진계에 뛰어든 그는 톱 사진작가 김중만에게 사사했다. ‘조선희와 남자들’ ‘조선희와 10년’ 등 다수의 개인전을 연 바 있으며, 정상급 스타들과 함께 매년 유명 패션지의 화보를 멋지게 장식하고 있다. 현재 스튜디오 ‘조아조아’를 운영 중.

<김>패션에 철학이 없다면 쓰레기

열정이 사그라진 자리

인내로 채워나갈 수 있어야

▶지해(JIHAYE.본명 김지해)=프랑스에서 더 유명한 실력파 디자이너. 지난 2001년 한국인 최초로 프랑스 파리 오트쿠튀르(고급 맞춤복)협회에 초청 멤버로 입성해 10여회 가까이 쇼를 펼쳤다. 1년 전부터 일본의 유명 디자이너 브랜드 ‘유미 카쓰라’의 총괄디자인을 맡고 있으며, 이 브랜드의 유럽 매장도 책임지고 있다. 올 초 가회동에 ‘지해’ 매장을 열고 국내 활동도 시작한 그는 최근 대구서 열린 ‘2002 월드컵 기념패션쇼’에 프랑스에서 공수한 시가 5억원짜리 드레스를 선보여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지해와 조선희는 둘도 없는 친구 사이다. 지난 1999년 조선희가 한국판 ‘보그’에 실릴 드레스 화보를 찍기 위해 파리의 지해를 방문한 게 인연의 시작이었다. 나이는 몇 살 아래지만 자신을 잘 챙겨 주고, 자상한 조선희를 ‘엄마’로 부르는 지해와 순수하고 솔직한 지해를 ‘아이같다’고 말하는 조선희는 어울리는 듯, 또 그렇지 않은 듯 묘한 인생의 동반자다. 최근 국내는 물론 해외 패션계에서 활동하느라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는 지해를 응원하기 위해 ‘엄마’ 조선희가 가회동 한옥 스튜디오를 찾았다.

친해도 서로 바쁜 탓에 자주 만나지 못하는 그들이 모처럼 만나 장장 다섯시간에 걸쳐 진솔한 대화를 나눴다. 패션계와 사진계에서 성공한 여성의 표본으로 꼽히는 그들이 솔직하게 털어놓는 여성의 아름다움, 스타일, 일과 성공에 대한 이야기를 엿들어보자.

#아름다움에 대해

지해(이하 김)=딱 30초예요. 세계적으로 알아주는 톱모델이며 스타도 만난 지 30초만 지나면 더 이상 예쁘다는 생각이 안 들어요. 진정한 아름다움은 내면에 있다는 어른들 말씀이 정말 맞다니까요.

조선희(이하 조)=저는 제일 싫은 질문이 ‘만난 연예인 중 누가 제일 예쁘냐’는 거예요. 누구나 나름대로 매력이 있고, 아름다움이 있어요. 미(美)는 관점에 따라 다른 것이고, 서로 비교할 필요가 없는 거예요. 그런데 한국 사람들은 꼭 순위를 매기려 해요. 성형을 많이 하는 것도 다 그런 이유 때문이겠죠. 전 성형에 반대는 안 하지만 요즘 잘나가는 연예인들과 사우나에 함께 가서 화장을 지우고 나면 모두 똑같이 생겨 당황할 때가 많아요. 한번은 네 명의 연예인이 죄다 똑같은 거예요. ‘에이, 좀 다르게 고치시지. 의사 선생님 너무 하셨네’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죠. 연예인들조차 제일 예쁜 연예인을 정해놓고, 똑같은 병원에서 똑같이 성형하니 참 안타까워요.

김=강남에 가면 난 누가 누군지 정말 구분이 안 돼. 그 정도로 다 똑같이 성형을 했더라고.

조=그런 점에선 패션도 마찬가지 아닌가?

김=맞아. 우리나라 여성들, 옷 정말 잘 입죠. 옷을 사랑하고, 옷에 대해선 돈을 아끼지 않죠. 그렇지만 천편일률적이에요. 유행이 지나치게 강조되기도 하고요. 뉴욕이나 파리 여성들은 30~40년 된 옷도 자신만의 스타일로 소화해서 척척 입고 다니는데, 우리는 새 옷, 새 유행에만 집착하는 편이죠. 그렇지만 일본이 그랬던 것처럼 우리도 곧 변할 거라 믿어요.

#작품에 대해

김=선희 사진은 어둡고 슬퍼요. 아마 선희가 살아온 배경이 작품세계에 영향을 미쳤겠죠.

조=그런 말 참 많이 들었죠. 저도 동의하고요. 근데 가끔은 바꾸고 싶어요. 바꾸려고 노력도 하고 있고요.

김=조금씩 바뀌는 게 느껴지지만 바꾼 작품 속에서도 니가 보이더라.

조=그럼요. 어떤 사람의 독자적인 작품세계는 그 사람의 인생에 따라 결정된다고 생각해요. 전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셔서 시골의 조부모님 밑에서 자랐어요. 5남매 중 셋째였고, 제가 스스로 노력하지 않으면 아무 것도 주어지지 않는 환경에서 살아 왔어요. 그 때문인지 제 사진은 슬프고 무거운 것 같아요. 근데 언니 작품은 굉장히 독특해요. 언니의 순수한 성격이나 어린 아이 같은 상상력이 그대로 발현된 옷이죠. 환상적이면서도 특이해요.

김=일본에서 패션을 공부했는데 당시 선생님은 학생들의 옷에 대해 평가하는 대신 ‘너만의 살아 있는 옷을 만들라’고 강조하셨어요. 그땐 이해가 잘 안 됐는데, 지금은 그게 진정으로 디자이너가 해야 할 일이란 생각이 들어요. 패션 속에 디자이너의 인생과 꿈, 철학이 들어 있지 않으면 쓰레기와 진배 없을 거에요.

#젊음에 대해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어느새 두 번째 와인병이 바닥을 드러내고 있었다. 눈가가 촉촉히 젖은 지해나 얼굴이 발그레해진 조선희에게서 이보다 더 솔직한 모습을 기대하기 어려울 것 같았다.

조=제 20대는 정말 암울했어요. 누가 다시 20대로 돌아가게 해준다 해도 절대 싫어요. 나아갈 길이 보이지 않았죠. 그땐 매일 똑같은 악몽을 꿨는데, 길을 건너려는데 갑자기 물이 차올라 길이 사라져 버리는 꿈이었어요. 당시 제 상황을 잘 대변해주는 꿈이죠. 암울한 20대가 있어 지금의 내가 있다고 생각하지만 참 힘들었어요.

김=저도 똑같았어요. 오죽 힘들었으면 과거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거의 기억이 나지 않아요. 항상 ‘얼른 나이 먹어야지’하고 되뇌었죠. 전 지금 제가 만든 옷을 바라보며 와인을 앞에 두고 제 얘기를 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소름끼치도록 행복해요. 사람들은 돈과 명예의 크기를 비교하며 성공 여부를 가리지만 제겐 지금 이 순간이 행복이고 최고의 성공이에요.

조=맞아요. 전 제가 번 돈으로 어머니와 가족들에게 뭔가 해줄 수 있어서 정말 행복해요. 예전엔 제 스스로 힘들게 돈을 벌어서 누군가를 보살펴야 한다는 게 짐스럽게 느껴졌지만, 지금은 누군가에게 뭔가 해줄 때의 행복감이 얼마나 소중한지 잘 알아요.

김=20대 때의 암울함이 지금의 성공으로 아름답게 승화된 거지.

조=아마 20대 때 암울하지 않았으면 30대 때 암울해졌을 거야. 지금까지도 고생하고 있을 거고. 하하.

#성공에 대해

조=열정이 제일 중요해요. 사진을 사랑하는 마음, 남과 다른 나만의 것을 보여주겠다는 마음이 없으면 안 돼요. 사진이 아니면 꼭 죽을 것 같은 그런 열정이 없었다면 오늘날 아무 것도 이루지 못했을 거예요.

김=맞아. 그런데 열정에 인내도 더해져야 해. 열정은 쉽사리 사그라지거든. 그때 인내하는 마음이 있으면 부족한 열정을 채울 수 있다고 봐요. 중요한 건 어떤 불행이 닥쳐도 하는 일을 멈춰선 안 된다는 거예요. 고통을 일로 승화할 수 있어야 발전이 있어요.

조=제 밑에서 일하다가 관둔 사람이 아마 200명은 넘을 거예요. 1년 이상 참은 사람이 10명도 안 돼요. 대부분 하루나 1주일, 한 달쯤 있다가 갖은 핑계를 대곤 그만두더라고요. 그만큼 이 일이 고되고 버는 돈은 적거든요. 요즘 젊은이들은 열정이나 인내심이 좀 부족한 거 같아 안타까워요.

김=제 경우도 크게 다르지 않았어요. 제가 후배들을 키우려고 10년을 노력했는데, 배출시킨 후배가 강민조라는 디자이너 딱 한 명이에요.

조=그래도 제대로 된 한 사람이라도 건진 게 어디야? 하하.

그들은 사랑 때문에 노래를 포기한 마리아 칼라스, 불우한 어린 시절을 패션으로 승화시킨 존 갈리아노와 장 폴 고티에, 이민자 출신의 뛰어난 프랑스 축구선수들을 예로 들며 불행과 행복, 실패와 성공에 대해 끝도 없이 긴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성공한 스타이기 이전에 수많은 역경을 이겨낸 한 인간이자 어려울 때 서로를 보듬어 안아주는 친구로서 그들이 들려주는 이야기는 무한한 꿈과 희망, 그리고 사랑의 노래 그 자체였다.

김이지 기자(eji@heraldm.com) 사진=안훈 기자(rosedale@herald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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