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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10월 24일 수요일

파리 오뜨 꾸뛰르의 한국 디자이너, 지해(JiHay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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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분의 열정을 배우고 싶습니다!

유럽 쿠튀르 신데렐라 김지해 … 100% 핸드메이드

한국인 최초 파리 오트 쿠튀르 디자이너, 유럽 쿠튀르 신데렐라 … 화려한 수식어의 주인공 디자이너 김지해가 서울 종로구 가회동에 패션 하우스 ‘메종 김지해’를 오픈했다. 이 패션 하우스는 프랑스 파리에 거주하며 활동하는 그녀의 의상을 만나볼 수 있는 오픈된 공간이다. 김지해는 ‘비단을 감싸다’라는 의미의 라일인터내셔널(대표 강민조)이라는 국내 법인을 세우고 한국에서의 본격적인 활동을 알렸다. 이 회사의 대표는 디자이너 김지해의 레이블인 「지해쿠튀르(JiHaye Couture)」의 수석 디자이너 강민조씨가 맡았다.

‘메종 지해’는 100년 된 전통 한옥을 개조해 한국적인 느낌을 살렸다. 유명 인테리어 디자이너 마영범씨가 실내 디자인을 맡아 쿠튀르 하우스지만 전통의 미를 표현해 눈길을 끌었다. 특히 내부 곳곳에 눈에 띄는 단청 기둥들은 마씨가 직접 전통방식 그대로를 사용해 제작했으며 용의 움직임을 상징한다. ‘ㄱ’자 형태의 하우스 구조를 따라 용이 움직이며 마지막인 가봉실에서 용이 불을 내뿜는 것을 표현했다.

‘메종 지해’는 100% 핸드메이드 의상들을 선보인다. 지해의 특기(?)인 여성 드레스와 함께 남성 수트도 제작이 가능해 남자 고객들이 잔뜩 기대하고 있다. 남성 수트의 경우 벌당 제작 기간이 1달 반~ 2달이 소요된다. 제작을 위해서 「지해」의 메인 하우스인 프랑스 파리뿐 아니라 이탈리아 피렌체, 서울 등 세계 각지에서 장인들의 손길을 거친다.

라일Int’l 설립 「지해」 라이선스 사업

이 과정에서 디자이너 김지해의 ‘고집’을 엿볼 수 있다. 김지해는 수트를 수공으로 제작할 장인들을 직접 피렌체 근교에 찾아가 계약했다. 또한 단추 구멍과 같이 작은 디테일 하나까지 세밀하게 신경을 써 꼭 마음에 맞는 전문가에게 맡긴다. 이탈리아에서 수공으로 제작된 수트는 단추 구멍 하나를 위해 다시 파리로 운반된다. 그 후 김지해의 마지막 수정작업과 컨폼을 거쳐 최종적으로 한국에 있는 소비자에게 전달된다.

여성복은 드레스를 위주로 선보인다. 이 역시 대부분이 장인에 의한 핸드메이드로 제작되며 「지해」의 드레스는 한국의 ‘메종 지해’와 프랑스 파리 마레지구에 있는 지해의 메인 패션 하우스에서만 만날 수 있다. 특히 지난 시즌부터 김지해는 웨딩드레스 디자인에도 참여했다. 일본의 유명 웨딩드레스 디자이너 유미 카츠라(Yumi Katsura)와 코워크해 ‘유미 카츠라 by 지해’라는 타이틀로 패션쇼를 진행했다.

이 프로젝트는 유미 카츠라의 적극적인 제안으로 이뤄졌다. 동양인으로는 일본 하나에모리에 이어 두 번째로 오트 쿠튀르에 진출한 김지해의 의상들을 보고 반한 유미 카츠라는 프랑스 파리로 직접 건너와 자신의 웨딩 브랜드의 수석 디자이너 자리를 맡아 달라고 김지해에게 의뢰했다. 김지해는 처음엔 웨딩드레스에 관심이 없어 거절했으나 인간적으로 다가오는 유미 가츠라에게 끌려 지난 1월 파리 컬렉션 기간 중 ‘유미 카츠라 by 지해’의 첫 번째 컬렉션을 선보였다.

드레스 & 남성 수트, 최고급 맞춤 제작

컬렉션은 웨딩드레스계에 큰 파장을 불러 일으켰다. 흰색으로 고정관념화돼 있는 웨딩드레스를 아름다우면서 화려한 컬러를 사용해 표현했다. 이 중 블랙 웨딩드레스는 신부의 고귀함을 더욱 살려줘 각광을 받았다. 파리 오트 쿠튀르 진출이 평생 소원이었던 유미 카츠라는 디자이너 김지해에 의해 그 꿈을 이뤘다. 김지해는 한번도 느껴보지 못했던 웨딩드레스의 세계를 알게 됐으며 일본 유미 카츠라 본사의 체계적인 패션 하우스의 시스템을 배울 수 있었다.

김지해는 “유미 카츠라는 100% 핸드메이드 작업으로 한달에 100벌 정도의 웨딩드레스를 생산한다. 이것은 세계 최고의 노하우이다. 이런 기술과 인력을 보유한 유미 가츠라사의 다양한 전략을 「지해」의 비즈니스에 알맞게 도입할 계획이다”고 말했다. 또한 ‘유미 카츠라 by 지해’의 웨딩드레스는 서울의 ‘메종 지해’에서 다른 「지해」의 드레스와 함께 오더가 가능하다.
이 패션 하우스는 라일인터내셔널에서 운영한다. 이 회사는 「지해」의 수석 디자이너이자 라일인터내셔널 대표를 겸임하고 있는 강민조씨가 전담하고 있다. 김지해는 파리에서만 활동한 강대표에게 한국적 감각을 익히게 하기 위해 한국 비즈니스의 권한을 전적으로 부여했다. 김지해와 강대표는 6년 전 대구의 한 의상 콘테스트가 인연이 돼 지금까지 함께 하고 있다. 김지해는 강대표가 당시 작품을 보고 잠재된 그의 능력을 알아보고 파리로 그를 스카우트(?)했다.

日웨딩 「유미카츠라」 수석디자이너도

라일인터내셔널에서는 브랜드 「지해쿠튀르」에 대한 여러 비즈니스가 일어난다. 이 중 메인은 라이선스 사업이다. 이 회사는 좋은 퀄리티와 놓은 기술력을 보유한 장인과 소비자를 연결한다. 네이밍이 없어 상품을 불륨화하지 못한 장인들은 쿠튀르 이미지의 「지해」를 브랜드 이름으로 사용함으로써 상품에 가치와 인지도를 부여한다. 이와 함께 소비자들은 「지해」의 더욱 다양한 아이템을 만날 수 있다.
또한 디자이너 김지해와 강대표는 라이선스로 인한 브랜드 이미지 손상을 막기 위해 판매권과 생산권만 업체에 주며 디자인에 대한 권한은 라일인터내셔널에서 소유한다. 이것은 쿠튀르 이미지인 브랜드의 디자인과 아이덴티티를 유지하기 위해서다. 이를 위해 디자이너 하우스와 아틀리에를 마련했다.

디자이너 하우스에는 프랑스 일본 한국 등의 디자이너들이 모여 함께 사는 즐거운 공간을 만들었다. 이 디자인 하우스와 아틀리에서는 라이선스와 관련된 상품 디자인과 ‘메종 지해’의 작업 등이 이뤄진다.
디자이너 김지해의 인맥은 그녀의 디자인에서 보이는 ‘고집’과 비슷하다. 김지해는 아트 디렉터 펠릭스와도 16년 간의 긴 비즈니스 파트너와 우정을 이어오고 있다. 펠릭스는 「지해」 「유미카츠라 by 지해」 ‘메종 지해’ 등 김지해와 관련된 모든 비즈니스의 아트 디렉터를 맡고 있다. 최근에는 프랑스 파리의 유미 카츠라 웨딩숍의 컨설팅을 맡았다.





지해 With 강민조? 펠릭스 환상 팀워크

그는 이제 지해의 모국인 한국에서 독자적인 그의 예술활동을 펼칠 계획이다. ‘메종 지해’ 부근에 자신의 아트 스튜디오를 오픈해 작품을 전시하고 각종 이벤트를 진행한다. 한국을 매우 사랑하는 그는 모국인 프랑스와 한국을 오가며 활동하면서 김지해와의 비즈니스 파트너십을 지속한다. 이 두 명의 팀워크에 강민조 대표가 가세했다. 강대표는 김지해가 ‘자신을 앞지르는 감성의 소유자’라고 말할 만큼 아끼는 디자이너다.

그는 쿠튀르 브랜드인 「지해」를 이어 나갈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이자 디자이너 김지해의 디자인 동반자이다. 김지해는 “앞으로는 「지해by민조」로 브랜드를 전개할 것이다. 잠재력 있는 강민조 대표를 전면에 내세워 「지해」만의 쿠튀르 디자인 세계를 구축해 나갈 것이다”고 앞으로의 계획을 밝혔다.















사진설명
_디자이너 김지해(가운데),
아트 디렉터 펠릭스(오른쪽),
수석 디자이너 강민조(왼쪽)는
동료이자 비즈니스 파트너로
끈끈한 관계를 맺고 있다.















Felix PROFILE

펠릭스는 독특한 경력의 소유자이다. 그는 대학에서 의학을 전공했으며 프랑스와 미국에서 연극과 연기를 공부했다. 이뿐 아니라 미국 뉴욕의 줄리어드 음대와 프랑스 스위스 등의 학교에서 석사 과정을 마쳤다. 이런 학업을 바탕으로 그는 오페라 가수로도 활동했으며 컨템포러리 아트 디렉터로서는 국내 현대갤러리에서 전시를 하는 등 다채로운 경력의 소유자이다.

















Min Jo PROFILE
대구의 한 의상 콘테스트에서 김지해의 눈에 띄어 프랑스 파리에서 김지해와 7년을 함께 한 강민조 대표는 현재 「지해쿠튀르」의 수석 디자이너이자 라일인터내셔널의 대표를 겸임하고 있다. 그는 앞으로 「지해쿠튀르」의 새로운 디자이너를 맡게 될 것이며 다음 시즌부터는 「지해by민조」로 파리 오트쿠튀르에서 컬렉션을 선보일 계획이다.


















日 웨딩드레스계의 대모
유미 카츠라는 누구?


“나는 신부를 위해 태어났어요”라고 말하는 일본 대표 웨딩드레스 디자이너 유미 카츠라는 일본에서 태어나 평생을 웨딩과 함께 해왔다. 그녀의 브랜드 「유미카츠라」는 현재 일본에서 30개의 라이선스 비즈니스와 70개의 프렌차이즈를 전개 중이다. 이와 함께 4개의 직영숍을 운영 중이며 지금까지 3만여명의 신부들이 이 「유미카츠라」의 웨딩드레스를 입고 결혼식을 올렸다. 이 브랜드의 웨딩컬렉션은 일본뿐 아니라 뉴욕 로스앤젤레스 파리 런던 바르셀로나 모나코 모스코바 등지에서도 인기를 끌고 있다.

성공한 그녀들에겐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조>내게 20대는 암울했지만

사진이 아니면 죽을것만 같은…

그 열정이 지금의 나를 만들어

▶조선희=‘연예인의 매력을 누구보다 잘 포착하는 인물’로 소문이 자자한 유명 상업 사진작가. 연예인을 연예인 자신보다 더 잘 꿰뚫어 그의 주위에는 사진을 찍겠다는 스타들이 줄을 서 있다. 연세대 의생활학과를 졸업한 뒤 사진이 좋아 무작정 사진계에 뛰어든 그는 톱 사진작가 김중만에게 사사했다. ‘조선희와 남자들’ ‘조선희와 10년’ 등 다수의 개인전을 연 바 있으며, 정상급 스타들과 함께 매년 유명 패션지의 화보를 멋지게 장식하고 있다. 현재 스튜디오 ‘조아조아’를 운영 중.

<김>패션에 철학이 없다면 쓰레기

열정이 사그라진 자리

인내로 채워나갈 수 있어야

▶지해(JIHAYE.본명 김지해)=프랑스에서 더 유명한 실력파 디자이너. 지난 2001년 한국인 최초로 프랑스 파리 오트쿠튀르(고급 맞춤복)협회에 초청 멤버로 입성해 10여회 가까이 쇼를 펼쳤다. 1년 전부터 일본의 유명 디자이너 브랜드 ‘유미 카쓰라’의 총괄디자인을 맡고 있으며, 이 브랜드의 유럽 매장도 책임지고 있다. 올 초 가회동에 ‘지해’ 매장을 열고 국내 활동도 시작한 그는 최근 대구서 열린 ‘2002 월드컵 기념패션쇼’에 프랑스에서 공수한 시가 5억원짜리 드레스를 선보여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지해와 조선희는 둘도 없는 친구 사이다. 지난 1999년 조선희가 한국판 ‘보그’에 실릴 드레스 화보를 찍기 위해 파리의 지해를 방문한 게 인연의 시작이었다. 나이는 몇 살 아래지만 자신을 잘 챙겨 주고, 자상한 조선희를 ‘엄마’로 부르는 지해와 순수하고 솔직한 지해를 ‘아이같다’고 말하는 조선희는 어울리는 듯, 또 그렇지 않은 듯 묘한 인생의 동반자다. 최근 국내는 물론 해외 패션계에서 활동하느라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는 지해를 응원하기 위해 ‘엄마’ 조선희가 가회동 한옥 스튜디오를 찾았다.

친해도 서로 바쁜 탓에 자주 만나지 못하는 그들이 모처럼 만나 장장 다섯시간에 걸쳐 진솔한 대화를 나눴다. 패션계와 사진계에서 성공한 여성의 표본으로 꼽히는 그들이 솔직하게 털어놓는 여성의 아름다움, 스타일, 일과 성공에 대한 이야기를 엿들어보자.

#아름다움에 대해

지해(이하 김)=딱 30초예요. 세계적으로 알아주는 톱모델이며 스타도 만난 지 30초만 지나면 더 이상 예쁘다는 생각이 안 들어요. 진정한 아름다움은 내면에 있다는 어른들 말씀이 정말 맞다니까요.

조선희(이하 조)=저는 제일 싫은 질문이 ‘만난 연예인 중 누가 제일 예쁘냐’는 거예요. 누구나 나름대로 매력이 있고, 아름다움이 있어요. 미(美)는 관점에 따라 다른 것이고, 서로 비교할 필요가 없는 거예요. 그런데 한국 사람들은 꼭 순위를 매기려 해요. 성형을 많이 하는 것도 다 그런 이유 때문이겠죠. 전 성형에 반대는 안 하지만 요즘 잘나가는 연예인들과 사우나에 함께 가서 화장을 지우고 나면 모두 똑같이 생겨 당황할 때가 많아요. 한번은 네 명의 연예인이 죄다 똑같은 거예요. ‘에이, 좀 다르게 고치시지. 의사 선생님 너무 하셨네’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죠. 연예인들조차 제일 예쁜 연예인을 정해놓고, 똑같은 병원에서 똑같이 성형하니 참 안타까워요.

김=강남에 가면 난 누가 누군지 정말 구분이 안 돼. 그 정도로 다 똑같이 성형을 했더라고.

조=그런 점에선 패션도 마찬가지 아닌가?

김=맞아. 우리나라 여성들, 옷 정말 잘 입죠. 옷을 사랑하고, 옷에 대해선 돈을 아끼지 않죠. 그렇지만 천편일률적이에요. 유행이 지나치게 강조되기도 하고요. 뉴욕이나 파리 여성들은 30~40년 된 옷도 자신만의 스타일로 소화해서 척척 입고 다니는데, 우리는 새 옷, 새 유행에만 집착하는 편이죠. 그렇지만 일본이 그랬던 것처럼 우리도 곧 변할 거라 믿어요.

#작품에 대해

김=선희 사진은 어둡고 슬퍼요. 아마 선희가 살아온 배경이 작품세계에 영향을 미쳤겠죠.

조=그런 말 참 많이 들었죠. 저도 동의하고요. 근데 가끔은 바꾸고 싶어요. 바꾸려고 노력도 하고 있고요.

김=조금씩 바뀌는 게 느껴지지만 바꾼 작품 속에서도 니가 보이더라.

조=그럼요. 어떤 사람의 독자적인 작품세계는 그 사람의 인생에 따라 결정된다고 생각해요. 전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셔서 시골의 조부모님 밑에서 자랐어요. 5남매 중 셋째였고, 제가 스스로 노력하지 않으면 아무 것도 주어지지 않는 환경에서 살아 왔어요. 그 때문인지 제 사진은 슬프고 무거운 것 같아요. 근데 언니 작품은 굉장히 독특해요. 언니의 순수한 성격이나 어린 아이 같은 상상력이 그대로 발현된 옷이죠. 환상적이면서도 특이해요.

김=일본에서 패션을 공부했는데 당시 선생님은 학생들의 옷에 대해 평가하는 대신 ‘너만의 살아 있는 옷을 만들라’고 강조하셨어요. 그땐 이해가 잘 안 됐는데, 지금은 그게 진정으로 디자이너가 해야 할 일이란 생각이 들어요. 패션 속에 디자이너의 인생과 꿈, 철학이 들어 있지 않으면 쓰레기와 진배 없을 거에요.

#젊음에 대해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어느새 두 번째 와인병이 바닥을 드러내고 있었다. 눈가가 촉촉히 젖은 지해나 얼굴이 발그레해진 조선희에게서 이보다 더 솔직한 모습을 기대하기 어려울 것 같았다.

조=제 20대는 정말 암울했어요. 누가 다시 20대로 돌아가게 해준다 해도 절대 싫어요. 나아갈 길이 보이지 않았죠. 그땐 매일 똑같은 악몽을 꿨는데, 길을 건너려는데 갑자기 물이 차올라 길이 사라져 버리는 꿈이었어요. 당시 제 상황을 잘 대변해주는 꿈이죠. 암울한 20대가 있어 지금의 내가 있다고 생각하지만 참 힘들었어요.

김=저도 똑같았어요. 오죽 힘들었으면 과거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거의 기억이 나지 않아요. 항상 ‘얼른 나이 먹어야지’하고 되뇌었죠. 전 지금 제가 만든 옷을 바라보며 와인을 앞에 두고 제 얘기를 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소름끼치도록 행복해요. 사람들은 돈과 명예의 크기를 비교하며 성공 여부를 가리지만 제겐 지금 이 순간이 행복이고 최고의 성공이에요.

조=맞아요. 전 제가 번 돈으로 어머니와 가족들에게 뭔가 해줄 수 있어서 정말 행복해요. 예전엔 제 스스로 힘들게 돈을 벌어서 누군가를 보살펴야 한다는 게 짐스럽게 느껴졌지만, 지금은 누군가에게 뭔가 해줄 때의 행복감이 얼마나 소중한지 잘 알아요.

김=20대 때의 암울함이 지금의 성공으로 아름답게 승화된 거지.

조=아마 20대 때 암울하지 않았으면 30대 때 암울해졌을 거야. 지금까지도 고생하고 있을 거고. 하하.

#성공에 대해

조=열정이 제일 중요해요. 사진을 사랑하는 마음, 남과 다른 나만의 것을 보여주겠다는 마음이 없으면 안 돼요. 사진이 아니면 꼭 죽을 것 같은 그런 열정이 없었다면 오늘날 아무 것도 이루지 못했을 거예요.

김=맞아. 그런데 열정에 인내도 더해져야 해. 열정은 쉽사리 사그라지거든. 그때 인내하는 마음이 있으면 부족한 열정을 채울 수 있다고 봐요. 중요한 건 어떤 불행이 닥쳐도 하는 일을 멈춰선 안 된다는 거예요. 고통을 일로 승화할 수 있어야 발전이 있어요.

조=제 밑에서 일하다가 관둔 사람이 아마 200명은 넘을 거예요. 1년 이상 참은 사람이 10명도 안 돼요. 대부분 하루나 1주일, 한 달쯤 있다가 갖은 핑계를 대곤 그만두더라고요. 그만큼 이 일이 고되고 버는 돈은 적거든요. 요즘 젊은이들은 열정이나 인내심이 좀 부족한 거 같아 안타까워요.

김=제 경우도 크게 다르지 않았어요. 제가 후배들을 키우려고 10년을 노력했는데, 배출시킨 후배가 강민조라는 디자이너 딱 한 명이에요.

조=그래도 제대로 된 한 사람이라도 건진 게 어디야? 하하.

그들은 사랑 때문에 노래를 포기한 마리아 칼라스, 불우한 어린 시절을 패션으로 승화시킨 존 갈리아노와 장 폴 고티에, 이민자 출신의 뛰어난 프랑스 축구선수들을 예로 들며 불행과 행복, 실패와 성공에 대해 끝도 없이 긴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성공한 스타이기 이전에 수많은 역경을 이겨낸 한 인간이자 어려울 때 서로를 보듬어 안아주는 친구로서 그들이 들려주는 이야기는 무한한 꿈과 희망, 그리고 사랑의 노래 그 자체였다.

김이지 기자(eji@heraldm.com) 사진=안훈 기자(rosedale@heraldm.com)